시인 마로면 관기약국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을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탄 소식을 안 그날, 정확히는 그 다음날 일 것이다. 일찍 자기 때문에 그 다음날 소식을 들었다.
하루 종일 들떠서 보냈다. 온 국민이 내일처럼 기뻐했을 것이다.(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더욱 좋아라했다. 여기저기 문학을 하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기쁨을 함께 나누느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젊은 우리 약사는 마음껏 기쁨을 함께 하라며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나를 배려해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약사도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어서 일거다. 종종 나에게 책을 선물해 주곤 한다.
얼마나 바랐던 일인가. 그걸 54살 밖에 되지 않은 젊은 작가 한강이 받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주위에선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지만, 노벨문학상 받기가 하늘에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다는 걸 알기에 더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태껏 나이든 작가에게 주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왔다고 하는데 젊은 작가 한강이 받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기대하지도 않은 뜻밖의 소식은 기쁨이 몇 배가 된다.
시집이나 동시집을 주로 읽고 고전이나 인문학책을 읽었던 나는 한강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그의 유일한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몇 년 전 읽은 게 전부였다. 한강의 소설이 궁금해 인터넷 서점에 주문했더니 예약판매를 하고 있다. 잠깐 사이 한강이 쓴 책들이 동이 난 것이다.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우선 여섯 권을 주문해놓고 그의 시집을 꺼내 읽었다. 찬찬히 되새기며 읽어 보았다. 전에는 스치듯 읽었던 시어들이 가슴을 파고 들어온다. 그래 역시 한강이구나 생각해본다.
시집을 읽고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빌려서 읽었다. 주문한 책이 언제 올지 몰라서.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시를 읽으며 느끼지 못하는 묘한 감동을 느껴본다. 소설 속 인물들에 빠져서 단숨에 읽어보고 싶은 매력이 있다. 어쩌면 이렇게 인물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묘사했는지 모르겠다. 소설 속 주인공인 영혜가 채식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 아프게 느껴진다.
텔레비전에서 한강 특집을 보는데 인터뷰 내용에 깜짝 놀랐다. 어렸을 때 책을 보는데 글씨가 안 보여서 밖을 내다보니 어두워져 있었다고 한다. 언제부터 읽었는지 모르지만 어두워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책을 잘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한강의 노벨문학상 소식으로 서점가가 술렁이고 있다. 한강의 책을 사려는 사람들의 긴 줄을 보면서 희망을 가져본다. 한강의 책을 읽고 나면 또 다른 책을 찾게 될 것이고 그러다보면 독서하는 습관이 되리라는 것을.
국민의 절반이 한강의 책을 읽고 싶어 한다는 인터넷 기사를 보았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싶어 한다니 말이다. 누가 시켜서 책을 읽지는 않을 것이다. 한강의 책을 읽고, 또 다른 책도 읽고, 책을 많이 읽는 국민이 되면 우리의 의식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어찌 밥만 먹고 살 수 있겠는가.
어찌 좋은 옷만 입고 살 수 있겠는가.
어찌 좋은 집에서만 산다고 행복하다 할 수 있겠는가.
책을 읽고 마음이 부자가 될 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