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고구마가 잘되는 곳이여, 그런데 산단에 들어선다고 하니 걱정이여”
“여긴 고구마가 잘되는 곳이여, 그런데 산단에 들어선다고 하니 걱정이여”
  • 송진선 기자
  • 승인 2024.09.12 10:05
  • 호수 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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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단 편입토지서 사직 밤고구마 수확, 주민들 마음을 엿보다]

흙속을 파헤치니 주렁주렁 매달린 알토란 같은 밤고구마가 얼굴을 드러낸다.
고구마잎이 무성하니 흙속에 파묻혀 있는 뿌리도 고구마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잎을 거두고 고구마 수확기로 고랑, 고랑을 다니며 흙속을 파헤쳐 보니 생각보다 고구마가 크지 않다고 농민들은 말했다.  태워버릴 정도로 뜨거운 햇살과 열기는 뿌리채소까지 흉작을 만들었던 것이다.
스프링클러를 돌려 타들어 가는 고구마에 수분을 공급하는 등 정성 들여 토실토실한 밤고구마로 키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고생 보람도 없이 농심은 큰 상처를 입었다.
부농의 꿈을 키우며 고구마를 재배했던 농민들은 고구마밭을 비롯해 논밭들이 산단업단지 부지로 편입되는 것으로 설계돼 가뜩이나 싱숭생숭한 마음이 더욱 무겁다.
지난 2일 탄부 사직 밤고구마단지에서 올해 첫 밤고구마를 수확했다. 첫 수확지인 왜골(탄부면 고승리)에서 고구마를 수확하는 농민들과 속얘기를 나눴다.
“병원에 입원한 엄마(한옥분, 73)는 고구마를 캐야하는데 내가 병원에 있으니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이 태산이어서 엄마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키고 한옥분씨의 막내아들과 막내딸이 고 폭염속에서도 고구마를 캐는 현장이었다.
경운기에 매단 고구마 수확기가 고구마 밭고랑을 지나가자 땅속에 파묻혀 있던 고구마들이 겉으로 올라왔다. 일일이 호미로 고구마를 캐야 하기때문에 힘이 들었던 옛날엔 상상도 할 수도 없게 고구마를 캤다.
막내아들은 수확기계로 고구마를 캐면 막내딸은 밭 고랑마다 흩어져 있는 고구마를 한곳에 모으고 저장고로 옮기기 쉽게 포대에 담는 일을 했다.
이곳이 산업단지 부지에 포함된 곳이어서 이들과 자연스레 보은군이 계획한 산단업지 조성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는 것으로 대화가 옮겨갔다.
한옥분씨의 막내아들은 타지에서 살다가 아버지가 작고한 후 회사에 다니며 어머니를 도와 농사를 짓기 위해 가족 모두 보은으로 이사했다고 했다. 자녀교육을 걱정하기도 했지만 농촌에서 뛰어놀며 자라는 것 좋겠다는 생각에 가족들이 동의해 보은으로 이사를 온 케이스다.
12년전부터 회사 다니며 농사를 지었던 막내아들은 “보은군에서 동네를 삥 둘러싸고 산단을 조성하는 계획을 세웠는데 그런 설계를 누가 이해하겠나. 더구나 새로 지은 집과는 5, 6미터 정도밖에 안 떨어졌다는 얘기도 들었다. 후에 조금 더 띄운다고는 하는데 마을에 영향이 없겠나. 그리고 사직리 고승리의 주민들이 생계를 이어가는 전답과 임야로 산단부지를 조성해서 새로운 기업을 유치하는 것도 아니고 폭발위험이 있는 공장의 규모를 키우도록 산단을 조성한다고 하는데 이해가 안간다. 폭발위험이 있는 공장이 동네 가까이에 들어오도록 산업단지를 조성한다고 하는데 그걸 누가 이해하나”라는 의견을 밝혔다.
다른 지역의 주민들이 왜 산업단지 조성을 반대하느냐고 사직리 주민들을 비판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막내아들은 “본인들 집 5미터 옆에 폭발위험이 큰 화학공장이 들어온다고 해도 그런 소리하겠나. 폐기물 공장이 들어오는 걸 찬성할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설사 공단이 조성돼 그 공장들이 들어온다고 치면 대기관리를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우리는 잘 모르지만 미세먼지나 분진, 그리고 대기 중으로 유출되는 유해물질이 얼마나 많겠나. 우리동네는 평상시엔 바람이 동네 앞에서 옆쪽으로 불지만, 밤에는 고승리쪽에서 사직리쪽으로 분다. 밤늦게 일하다 체감한 것이다. 그러니 유해한 것들이 동네로 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시골사람들은 창문, 방문 다 열어놓고 산다. 동네에 사는 주민들의 건강에도 결코 이롭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씨의 막내아들은 “그동안은 마을에 귀농귀촌인이 들어왔지만, 산단이 조성되면 귀농귀촌이 들어오겠나. 지금 살고 있는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누가 동네에 남겠나. 우리 어머니도 산단 조성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대구에 산다는 한옥분씨의 막내딸은 “엄마 혼자 농사를 짓기 때문에 자주 와서 엄마를 돕는다. 고구마를 심고 캘 때면 매주 금요일 오후에 와서 농사일 거들고 일요일 밤에 내려간다. 나는 시골이 좋고 사직이 좋고 또 엄마도 사시니까 이곳으로 이사를 오려고 땅을 알아봤었다. 하지만 공단이 들어온다고 해서 지금은 경북 영천 쪽의 땅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막내딸은 “엄마가 평생을 여기서 농사짓고 사셨는데 산단이 조성되면 땅도 다 들어간다. 엄마가 불안해 하신다. 그리고 산단이 조성되면 농사지을 땅도 없고 산단 옆이라 공기도 좋지 않을텐데 고향이라고 계속 살 수 있겠나. 나중에는 고향을 뜰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라며 “왜 고향이 갑자기 산단에 휩싸이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막내아들과 막내딸은 “엄마는 집회가 있으면 계속 나가신다. 우리 마을에 산단이 조성되지 않는 것을 바라지만 산단이 조성되든, 안되든 빨리 결정이 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수십년을 함께 어울리며 고구마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수확 때면 서로 품앗이를 한다. 3일에는 김점례(72)씨와 유춘자(72)씨가 병원에 입원한 고구마농사 동지인 한옥분씨를 걱정하며 한씨의 막내아들과 막내딸과 함께 고구마를 거둬들였다.
김점례씨와 유춘자씨는 “우리는 남의 땅 얻어서 고구마 농사도 짓고 논농사도 짓는데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우리는 농사지을 땅이 없어. 뭐 먹고 사냐구. 지금은 남의 눈치 안보고 농사지어서 자식 도움도 받지 않고 사는데 그 땅 다 산업단지에 들어가면 농사지을 곳도 없고 뭐하고 사냐구”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동네 주변에 땅도 나오지 않으니까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그 보상금으로 땅도 못산다. 그러다 보면 땅값 보상받아도 흐지부지 다 없어질거다. 그러면 땅만 없어지는 거지. 그리고 공장이 들어온다고 해서 우리같은 늙은이를 공장에서 누가 써줘? 그러니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안돼”라고 강조했다.
산단 조성에 대해서는 이들은 “처음에는 냄새도 안나고 좋은 공장이 들어온다고 해서 동네 사람들도 찬성했어.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 폭발 위험이 큰 화학공장이 들어온다잖아. 그러니 누가 찬성할 수 있어. 반대할 수밖에 없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그렇게 사직리에 산업단지를 만들고 싶으면 아예 주민들을 다 이주시켜 줘. 그러면 민원도 없어질 것 아닌가”라는 의견을 밝히면서 “하지만 우리는 절대 반대여. 소송을 걸어서라도 사직리에 공장이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한편 사직산업단지는 보은군이 탄부면 사직리와 고승리 일원 84만9천㎡에 104만㎡ 부지에 4단계 충북도 지역균형발전사업비 130억원을 포함 총 1천100억원을 들여 조성할 계획이다. 빠르면 올해 말부터 토지 보상을 시행하고 내년 착공해 오는 2026년 말까지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2일 탄부 사직 밤고구마단지에서 올해 첫 고구마를 수확하고 있는 농민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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