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은군은 속리산, 구병산, 금적산 등 전국적으로 유명한 산을 비롯해 주위에 크고 작은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지역으로 약 403,358㎢(군 면적의 70%)의 임야와 숲을 보유하고 있다. 이 임야 속에는 23개 구간 약 75㎞에 달하는 임도(林道)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임도와 숲은 본래 역할에만 충실할 뿐, 주민들을 위한 임도와 숲으로 이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임도에 꽃길과 쉼터를 조성하고 이와 연계된 생태숲이나 공원을 조성해 주민들에게 휴식과 여가의 공간으로, 보은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는 꼭 들려봐야 하는 명소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할 때이다. 산림보호 및 경영을 위해 개설된 임도에 건강과 문화의 테마가 입혀진 특색 있는 임도와 아름다운 숲의 사례를 찾아 소개한다. -편집자주-
-
- 1. MTB코스와 생태숲으로 발길모으다(제천 백운산임도)
- 2. 투자한 만큼 주민들은 숲을 찾는다(기장 일광산임도)
- 3. 임도에 깔린 황토를 맨발로 밟는다(대전 계족산임도)
- 4. 숲과 임도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다(횡성 태기산임도)
- 5. 아름다운 숲과 임도에 기대어 쉬다(제주 교래리임도)
- 6. 마을이 임도와 어울려 하나가 되다(제주 올레 14-1)
- 7. 보은군의 임도에 건강과 문화를 입히자
#가장 아름다고 평화로운 길, 제주올레
과거의 여행이 차를 타고 다니면서 바삐 보고 훌쩍 떠나는 띄엄띄엄 점을 찍는 것 같은 여행이라면, 요즘은 그 점들을 이어가는 긴 선의 여행이 요즘 대세이다. 즉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천천히 자연과 한데 어울러져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고 가슴에 새기고 가는 여행이 주목받고 있다. 그 정점에 제주올레길이 있다.
제주올레는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길이다. 온전히 걷는 사람들만을 위한 길, 걷고 싶은 만큼 걸을 수 있는 긴 길이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바다와 오름, 감귤나무 돌담길, 사시사철 푸른 들, 평화로운 마을을 품고 있는 제주올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이다. 이런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이 고향에 필요하다고 생각한 서명숙(전 오마이뉴스·시사저널 편집국장)이사장을 중심으로 2007년부터 제주올레는 시작됐다. 끊어진 길을 잇고 잊혀진 길을 찾고 사라진 길을 불러냈다.
올레는 집 대문에서 마을길까지 이어지는 아주 좁은 골목을 뜻하는 제주사투리이다. 검은 현무암으로 쌓은 집으로 가는 골목올레는 집과 마을을, 사람과 세상을 이어주는 길이며, 구불구불 이어지는 제주 돌담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길이다. 제주올레는 2007년 9월 1코스(말미오름부터 섭지코지까지)가 개장되기 시작해 2011년 4월 18코스(동문로터리 산지천 마당부터 조천읍 만세동산)까지 총 23개 코스 374.6㎞가 조성되어 있다.
제주올레 길은 자연그대로의 마을길과 산길을 이용해 조성되었기 때문에 길을 이끌어주는 안내표식들이 중요하다. 화살표, 리본, 시작점 표지석, 간세 등이 낯선 탐방객들의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화살표는 길바닥, 돌담, 전신주 등에 파란색과 주황색으로 진행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파란색을 시작점에서 종점으로 가는 순방향이며, 주황색으로 올레길을 역방향으로 걸을 경우 따르면 된다. 파란색과 주황색 두 가닥으로 만든 리본은 사람의 눈높이 보다 조금 높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산림이 무성한 곳에서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시작점 표지석은 각 코스의 시작위치에 세워져 있으며, 윗면에는 코스의 약도와 경로가 그려져 있다.
간세는 제주올레의 상징이 되어버린 제주 조랑말의 이름으로, 제주 조랑말은 체구가 작지만 체질이 강하고 성격이 용감하다. 간세의 머리가 가리키는 방향이 올레의 진행방향이다. 간세의 몸통위에는 현재 진행하는 코스, 위치번호, 남은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제주올레의 참맛을 느끼려면 제주의 초원을 느릿느릿 걸어다는 간세처럼 놀멍, 쉬멍 천천히 걸어야 한다.
#마을과 한데 어우러진 올레길 14-1
제주 올레길이 대부분 해변가에 조성되어 있어 제주바다와 이국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14-1코스는 숲과 임도, 오름, 마을길 등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다.
이 코스는 2010년 4월 24일 개장했으며, 총 18.8㎞로 올레길 중 다섯 번째로 긴 코스이다. 저지마을회관을 출발해 문도지오름을 올라 제주도 전역을 둘러보고 저지곶자왈의 원시림을 몸으로 체험하면 녹차 재배지인 오설록에 도착하게 된다. 이어 임도와 농경지가 어우러진 무릉곶자왈을 지나 무릉리 마을을 통과하면 종착점인 무릉생태학교에 도착하게 된다.
올 여름 유난히 자주 내리는 비는 8월말이 가까워졌는데도 변함이 없다. 비를 맞으며 저지마을회관을 출발했다. 비를 맞은 현무암이 더욱 검은 모습으로 저지마을 곳곳에 서있다. 일부는 넝쿨이 타고 올라 돌담의 본래모습이 어떠했는지도 구분이 안될 정도다. 그 너머에는 검은 흙 밭에서 푸른 색 감귤이 아이주먹 만하게 자라고 있었다. '올 겨울이 되면 새콤달콤한 감귤이 되겠지’라는 생각에 입안에는 침이 고인다.
갈림길이 나타나자, 파란색 간세가 길을 안내해준다. 저지마을을 빠져나와 뒤를 돌아보니, 안개 속에 가려진 저지오름이 저 멀리 보인다. 저지오름 정상까지 오르는 숲길은 2005년 6월 생명의 숲으로 지정됐고 2007년에는 제8회 전국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할 만큼 아름다운 길이다. 아쉽게도 이번 코스에는 속해 있지 않아 속내를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멀리서나마 그 자태를 보게 됐다.
마을을 벗어나 잠깐 도로를 걷다가 임도로 접어들었다. 저 멀리에는 마을에서 보았던 돌담이 쌓여져 있고 그 안에는 푸른빛을 띠고 농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1시간을 걸었을까, 저 멀리 말목장이 보인다. 그 뒤편으로는 문도지오름이 눈에 들어온다. 말 목장 옆을 지날 때 말들이 배가 고픈지 다가와 입을 벌린다. 뭘 좀 달라는 표정이다. 딱히 줄 것이 없어 카메라 셔터소리만 몇 번 들려주고 곧장 문도지오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붉은 색 등산로를 걸어 문도지오름 정상에 오르니 여기저기 솟아 있는 기생화산인 오름들이 눈에 들어온다. 비가 와 몇 개만 확인 할 수 있었지만, 날씨가 좋을 때는 수십 개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문도지오름은 전 사면이 억새로 뒤덮여 있고 말 방목지로 이용되고 있다.
정상에서 곶자왈의 방향을 확인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얼마를 내려왔는지, 사유지라는 안내판이 들어온다. 제주올레길에는 곳곳에 사유지가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안내판에는 목장 문이 잘 닫혀있는지 확인해달라는 것과 말이나 소를 만나도 소리 지르거나 뛰지 말고, 또한 먹이를 주지 말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드디어 원시숲을 느낄 수 있는 저지곶자왈 속으로 들어섰다. 이곳 저지곶자왈부터 오설록까지 약 3㎞구간은 무성한 숲과 넓은 목초지가 반복되어 있다. 인위적으로 길을 조성하지 않고 아직 탐방객이 많이 다녀가지 않은 탓에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정도만 길이 나있다. 자칫 표식을 놓치면 곶자왈 속을 헤맬 수 있을 만큼 숲이 무성하다. 풀과 나무에 팔뚝이 긁히고 배낭이 나무에 수시로 걸린다.
곶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을 일컫는 제주사투리이다. 북쪽 한계지점에 자라는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남쪽 한계지점에 자라는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조하는 세계 유일의 독특한 숲이다. 육지의 숲이 겨울에 접어들면서 모든 잎을 떨구고 누런 갈색으로 변할 때, 곶자왈은 한 겨울에도 푸른 숲을 유지하고 있다. 14-1코스에서 만나는 저지곶자왈은 가장 식생 상태가 양호한 곶자왈 지역으로 꼽힌다.
저지곶자왈을 빠져나오면 드넓은 녹차밭이 펼쳐진다.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24만평의 녹차밭과 티뮤지엄(녹차박물관)이 있는 오설록이다. 많은 비가 내리고 있지만, 오설록티뮤지엄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은 끊이질 않는다. 올레길은 오설록을 한바퀴 돌고 가도록 조성되어 있다. 짙푸른 녹차밭을 지나며 잠시 푸른 향기에 빠져 걷다가, 도로를 잠시 걸어 곶자왈로 다시 접어들었다. 이 코스의 2/3 정도에 위치한 무릉곶자왈이다.
무릉곶자왈은 저지곶자왈과 같은 듯 다른 듯한 모습이다. 저지곶자왈이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채 좁은 길로 하늘보기가 어려웠다면, 무릉곶자왈은 대부분 넓은 임도와 목장길로 이루어져 있었다. 주변에는 저지곶자왈에서 보지 못한 야생화들의 모습과 제주 중산간 목초지에 조성된 목장과 농경지 경계용 돌담인 잣성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또한 주변에 소와 말 목장과 밭이 많은지, 소똥과 말똥이 여기저기 많아 조심스레(?) 걸어야 했다.
무릉곶자왈을 지나면 무릉1리 마을로 이어진다. 버스가 다니는 대로를 지나고 전통적인 제주의 시골풍경을 보면서 지나다보면 인향동 물내음식당 앞 버스정류소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는 14-1코스의 마지막 스탬프가 기다리고 있다. 이 코스를 상징하는 탱자나무 그림이 그려진 스탬프이다.
하지만 14-1코스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보통 다른 코스는 스탬프를 찍는 곳이 종점이지만, 14-1코스는 약 2㎞를 더 걸어 무릉2리 생태학교까지 가야 끝이 난다. 1994년까지 무릉초등학교였던 무릉생태학교에는 선사체험, 제주돌담쌓기, 장작패기, 농작물 타작 등 여러 가지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인근에 있는 생태연못인 구시흘못에는 관람데크가 연못을 둘레를 따라 조성되어 있었다. 관람데크를 한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14-1코스를 종료했다.
저지마을에서 무릉리 생태학교까지 약 5시간동안 비를 맞으며 걸었다. 숲길에서 느꼈던 무성한 생명력과 초록빛 자연의 힘이 푸른색 땀이 되어 뚝뚝 떨어지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