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 MTB코스와 생태숲으로 발길모으다(제천 백운산임도)
- ② 투자한 만큼 주민들은 숲을 찾는다(기장 일광산임도)
- ③ 임도에 깔린 황토를 맨발로 밟는다(대전 계족산임도)
- ④ 숲과 임도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다(횡성 태기산임도)
- ⑤ 아름다운 숲과 임도를 기대어 쉬다(제주 교래리임도)
- ⑥ 마을이 임도와 어울려 하나가 되다(제주 올레 14-1)
- ⑦ 보은군의 임도에 건강과 문화를 임히다
보은군은 속리산, 구병산, 금적산 등 전국적으로 유명한 산을 비롯해 주위에 크고 작은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지역으로 약 403,358㎢(군 면적의 70%)의 임야와 숲을 보유하고 있다. 이 임야 속에는 23개 구간 약 75㎞에 달하는 임도(林道)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임도와 숲은 본래 역할에만 충실할 뿐, 주민들을 위한 임도와 숲으로 이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임도에 꽃길과 쉼터를 조성하고 이와 연계된 생태숲이나 공원을 조성해 주민들에게 휴식과 여가의 공간으로, 보은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는 꼭 들려봐야 하는 명소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할 때이다. 산림보호 및 경영을 위해 개설된 임도에 건강과 문화의 테마가 입혀진 특색 있는 임도와 아름다운 숲의 사례를 찾아 소개한다. -편집자주-
#교래리 임도, 사려니숲길로 사랑받다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한라산 중산간 동쪽 울창한 원시림에는 지난 1993년 5.5km를 시작으로 매년 조금씩 조성되어 현재는 약 25km의 임도가 개설되어 있다. 이 교래리 임도는 당시 숲을 경영하고 보호하기 위해, 또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농가들의 통행로 확보를 위해 성묘객들의 편의를 위해 개설됐다.
그러던 중 2000년대 들어서부터 불기 시작한 MTB 열풍으로 산악자전거 마니아들은 이곳 교래리 임도에서 라이딩을 즐기기 시작했다. 평일에는 수십명, 주말과 휴일에는 100~200여명이 즐겨 찾았다. 이렇게 사람들이 찾기 시작한 교래리 임도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아름답고 이국적인 숲과 계곡, 오름 등으로 인해 전국에 아름다운 숲길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교래리 임도에 붉은 화산송이를 포설하고 이정표와 안내판, 화장실 등을 설치해 2009년 5월부터 트레킹 코스로 개방했다. 그해 9월 사려니숲길은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숲길부문에서 어울림상을 수상했다.
이때부터 명칭도 교래리 임도에서 사려니숲길로 바뀌었으며, 평일에는 하루 300~400여명,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1천여명이 사려니숲을 찾아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있다. 2009년도에는 약 3만명, 2010년에는 약 16만 여명이 찾아 급증 추세에 있다. 2009년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방문해 사려니숲길을 걸었다. 올해는 지난 5월말까지 약 6만 6천여명이 사려니숲길을 찾았다.
사려니 숲길은 제주시 봉개동 비자림로에서 물찻오름을 지나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사려니오름까지 이어지는 약 15㎞의 숲길이다. 해발고도 500~600m에 위치하고 있는 사려니 숲길은 완만한 평탄지형으로 주변에는 물찻·말찻·사려니 오름 등과 천미천·서증천 계곡 등이 분포되어 있다. 온대자연림인 사려니숲에는 78과 254종의 식생이 분포하고 있는데, 졸참·산딸·때죽 나무 등이 자생하고 있으며, 약 40여년전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산림녹화사업의 일환으로 식재되어 있다. 또한 천남성·꿩의밥·박새 등 초본류, 그리고 석송·뱀톰·고비·가는홍지 등의 양치류가 서식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사려니 숲길에는 포유류인 오소리와 제주족제비, 천연기념물인 매, 팔색조, 참매와 오색딱다구리, 박새, 곤줄박이 등 산림성 조류를 관찰할 수 있다. 사려니 숲길을 걷다보면 숲속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노루를 볼 수 있다.
사려니숲길은 2002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제주 생물권보전지역(Biosphere Reserve)내에 위치하고 있다.
#아름다운 숲길에 몸을 맡기다
사려니숲길은 여러 진출입로가 있는데, 식생을 보호하기위해 여러 곳이 통제되고 있다. 트레킹 마니아들이 주로 이용하는 루트인 비자림로 입구에서 출발해 붉은 오름을 지나 남조로까지 약 3시간이 소요되는 10㎞ 구간을 걷기로 했다.
비가 오는 가운데, 비자림로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는 20~30여대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고 비자림로 입구 1112도로변에도 20여대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입구 안내소 직원들로부터 날씨가 좋을 때는 주차장과 도로변에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라는 말을 듣고 사려니숲으로 들어갔다. 사려니 숲길 입구인 비자림로는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길로 선정된 삼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도로이다.
'비 때문에 진면목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 아닌가’하는 우려는 눈앞에 펼쳐진 자연그대로의 원시림, 육지에서는 접하기 힘든 식생, 바스락거리는 붉은색 화산송이, 구멍 난 검은색 현무암이 깔린 계곡 등. 이 정도만으로도 사려니숲의 매력에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사려니숲길의 사려니란 '살안이’ 혹은 '솔안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에 쓰이는 '살’ 혹은 '솔’은 신성한 곳 또는 신령스러운 곳이라는 신역(神域)이다. 따라서 사려니숲은 신성한 숲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물기를 잔뜩 머금고 떨어지는 이슬비와 희뿌연 안개에 휩싸인 사려니숲은 몽환적이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붉은 색 고운 자갈에 대해 궁금했다. 나중에 화산송이라고 알게 됐는데, 사려니 숲길 중 교래숲길(비자림로 입구부터 물찻오름까지 약 5㎞구간)에는 화산송이를 깔아 놓아 화산섬인 제주도만의 특색 있는 길로 만들었다. 화산송이에서는 음이온과 원적외선이 나와 피부활력과 인체의 피로를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걸을 때마다 '바스락’ 소리를 내는 화산송이는 건강을 떠나 그 소리만으로도 시원한 청량감을 준다.
사려니숲길 중 교래숲길 구간에서는 종종 계곡(계곡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작음)을 만나는데, 계곡바닥이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검은색 현무암이다. 기암괴석 같은 현무암들이 계곡을 흐르는 물과 어울려 이색적인 모습이다. 계곡 뒤편의 손때가 묻지 않은 원시자연림과 어울려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약 1시간을 남짓 걸어 물찻오름에 도착했다. 제주도 전역에 368개 오름이 분포되어 있지만, 물찻오름처럼 정상에 호수가 형성되어 있는 곳은 몇 곳 되지 않는다고 한다. 물찻오름 정상에는 수량이 많고 아름답기로 소문난 산정호수가 있는데,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사려니길에서 물찻오름 산정호수까지는 약 700m의 등산로를 걸어야 하는데, 자연휴식년제로 인해 이 등산로가 폐쇄된 상태이다. 내년말 자연휴식년에서 해제되어야 접근이 가능하다.
사려니숲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치유와 명상의 숲인 월든(Walden)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예약된 탐방객을 대상으로 산림욕을 통해 심신의 쾌적함을 제공하는 곳으로 명상, 시낭송, 숲체조, 숲이야기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주변에는 약 20미터 높이의 삼나무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넝쿨들이 하늘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삼나무를 타고 올라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잎이 가는 삼나무는 햇빛을 받기에 불리한 조건이므로, 주변에는 다른 식물이 발아하기 어렵도록 '피톤치드’로 알려져 있는 화학물질을 만들어 분비한다. 삼나무 숲에서 맡을 수 있는 '테르펜’ 향기는 사람의 심신을 맑게 해주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욕은 물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맑은 산소와 좋은 물질이 뿜어져 나오는 숲속에서 하는 목욕이 바로 산림욕이다. 코와 입으로는 '피톤치드’를 마시고 발로는 원적외선이 나오는 화산송이를 밟고 사려니숲에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삼나무 숲이 끝날 무렵, 왼쪽 숲속에서 무언가를 본 듯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노루다. 사려니숲길에서 노루를 만나는 행운을 잡은 것이다. 맛있는 풀을 놓칠 수가 없어서인지,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자주 있어서인지, 도망갈 생각도 않고 풀을 뜯다가 한번씩 쳐다보기를 반복한다. 사려니숲은 자연이 살아 숨쉬는 곳이라고 했는데, 그 모습을 눈으로 확인했다.
남조로 출구가 거의 다가 왔을 무렵, 제주도 특유의 장묘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무덤이 사려니숲길 주변에 몇 기가 보였다. 무덤 주변에 산담이라는 돌담이 둘러져 있다. 제주도에서는 사람이 사망하면 매장을 하고 봉분을 만들며 빠른 시일에 무덤 주변에 산담을 둘러야 한다. 산담을 하지 않으면 방목하던 말과 소가 들어와 풀을 뜯으며 묘를 훼손할 수 있으며, 늦가을 목장지대에 불을 붙이는 '방애불’로 위험에 처해지기도 한다. 망자의 시중을 들어주는 동자석(童子石)이 무덤앞에 세워지고 영혼의 바깥출입을 위해 산담에 60㎝ 정도의 길을 터주는데 이것을 신문(神門)이라 한다고.
사려니숲길 출구인 남조로 1118번 지방도가 저 멀리 보인다. 약 3시간을 쉬지 않고 걸어 땀과 비로 뒤범벅이 되었지만, 오히려 몸과 마음은 초록빛 상쾌함으로 날아갈 듯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