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을 대표하는 관광지 속리산은 9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었다. 대형버스 터미널에서 하차한 후 법주사나 문장대를 등반하기 위한 관광객들의 행렬이 넓은 도로를 가득 메워 산을 보는 것인지 사람을 보는 것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였다. 하지만 잊혀버린 관광지가 된 속리산의 위상도 급격히 추락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지정 순위를 보면 1호 지리산(1967년), 2호 경주(1968년), 3호 계룡산(1968년), 4호 한려해상(1968년)이고 6호인 속리산은 5호인 설악산과 같은 해인 1970년 3월 24일 지정됐다. 현재 22곳의 국립공원 중 속리산의 역사성이 무색하리만치 쇠퇴해 버렸다. 급기야 올해는 문화관광부가 2년마다 선정하는 한국이 꼭 가봐야할 한국 관광 100선에서도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충북에서는 속리산과 단양팔경, 괴산 산막이 옛길이 선정됐었으나 올해는 대통령 별장이었던 청남대가 선정됐고, 단양팔경은 연속 3회, 괴산 산막이 옛길은 2회 연속 선정됐다. 관광트렌드 및 관광객들의 수요를 맞추지 못하고 있는 속리산의 실상으로 보면 탈락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그리고 현재 보은군의 관광정책으로 보면 속리산은 한국인이 꼭 가봐야할 관광 100선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는데도 난망(難忘)하는 분위기이다. 속리산은 보은군의 대표먹거리, 지속가능한 미래식량이다. 불과 2, 30년 전만 해도 잘나갔던 속리산의 모습과 2, 30년을 지나오는 동안 추락한 관광지로 변한 속리산, 살리지 못한 숨은 매력을 재 발굴, 관광보은의 위상을 찾을 수 있도록 선진 사례 등을 통해 해답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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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은 여러모로 매우 유명한 곳이다.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여왕에 이어 부시 전 미국대통령도 방문한 바 있다. 거주 건축물과 정자, 정사, 서원 등 전통적 주거문화가 조선시대 사회구조와 독특한 유교적 양반문화를 잘 보여주고 이런 전통이 오랜 세월 온전히 지속되고 있는 곳이어서 2010년 7월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선정됐다. 또 대한민국민이라면 꼭 방문해야할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 100선에 3회 연속 선정되는 등 하회마을은 마을을 상징하는 많은 타이틀을 갖고 있다.
여기에 국보 121호인 하회탈을 쓰고 벌이는 하회별신굿탈놀이(국가무형문화재 제 69호 지정)는 하회마을을 계속 오고 싶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연중 200여차례 공연할 정도로 상설 공연하는 탈춤판은 하회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볼거리여서 외지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데 한몫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지난 추석연휴에 문재인 대통령까지 안동하회마을을 찾아 탈놀이 공연을 구경하고 관광객들과 함께 뒤풀이를 즐기던 장면이 언론매체에서 화제가 되고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안동하회마을은 추석연휴 내내 인사태가 났을 정도였다.
속리산 법주사에서 전해져 내려온 송이놀이가 안동 하회별신굿탈놀이 못지않게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어 볼거리가 충분한데도 방치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속리산 송이놀이는 가을철 속리축전기간 겨우 2회 공연, 즉 이틀 공연이 고작이다. 공연팀들이 계속 연습하고 계속 무대에 오르는 기회가 있다면 재능과 연기력이 늘거나 또 새롭게 각색해 재미있는 요소를 재배치하는 등 관객을 더 흡인시킬 수 있는 재량이 생길 수 있으나 1년 딱 두 번 무대를 만드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회별신굿 탄생 배경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하회마을 형성과 관계가 있다. 또 하회탈의 제작에 얽혀있는 허도령의 애틋함이 전설로 전해내려오고 있다. 가장 먼저 입촌해 터를 잡은 사람들은 허씨들에 의해서이다. 고려시대 초기 허씨들은 화산자락 따뜻하고 양지바른 거물실골에 자리잡았으며, 그 다음 마을에 들어온 안씨는 향교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향교골에서 모듬살이를 영위했다. 현재와 같은 하회마을의 모습이 형성된 것은 고려말 조선 초 풍산 류씨가 풍산 상리에서 길지를 찾아 이곳으로 옮겨온 후부터이다.
마을의 구성은 화산의 얕은 능선을 따라서 길이 나고 그 길을 중심으로 남촌과 북촌으로 나눠진다. 이 마을의 건축물들은 능선가 길을 등으로 하고 밖으로 향해 지었기 때문에 동서남북향의 건물일지라도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강을 향하고 있다. 이는 무더위를 식혀줄 뿐만 아니라 앞이 시원하게 트이고 강물이 흐르는 풍치를 즐기기 위함에서이다.
탈을 제작한 것은 허씨들이 터를 잡고 살 때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우환이 마을에 돌자 마을 사람들은 걱정이 대단했다. 어느 날 이 마을에 사는 허도령 꿈에서 산신령이 지금 마을 재앙은 신의 노여움 때문이라며 탈을 만들어 춤을 추면 신의 노여움이 풀리고 마을이 다시 평안을 찾을 것이고 알려줬다. 그러나 탈 만드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해야지 만일 누군가 엿보거나 알게 되면 부정이 타서 허도령은 그 자리에 피를 토하고 죽게 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허도령은 꿈이 너무나 기이하고 생시같이 느껴져서 동네어귀 으슥한 곳에 움막을 짓고 탈을 제작했다.
그러나 마을에 허도령을 사모하는 처녀가 있었는데 허도령이 보이지 않자 보고싶은 마음에 허도령이 탈을 제작하는 탈막으로 다가가 엿보고 말았다. 그러자 뇌성벽력이 천지를 진동하며 허도령은 그만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고 말았다. 허도령이 죽자 처녀도 죄의식에 사로잡혀 자결했다. 마을사람은 처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화산 중턱에 서낭당을 짓고 처녀를 성황신으로 받들어 매년 정월대보름에 동제사를 올리고 있다.
당시 허도령이 제작한 탈은 모두 14개였으나 3개(총각, 별채, 떡달이탈)는 분실되고 현재 10종 11개가 국보 121호로 지정되어 있다. 허도령이 마지막으로 제작하던 탈은 이매탈로 턱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어 미완성의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하회마을에서 12세기 중엽부터 상민들에 의해서 연희되어 온 탈놀이이다. 이 탈놀이는 마을의 안녕과 풍년농사를 기원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열렸던 별신굿이라는 마을 굿의 일환으로 연행되었다. 별신굿이란 별나다, 특별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곧 별난 굿 또는 특별한 큰 굿을 의미한다.
상민들은 탈놀이를 통해 자신들의 억눌린 감정과 불만을 해소할 수 있으며 양반들은 상민들의 비판과 풍자를 통해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불만을 해소시켜 줌으로써 갈등과 저항을 줄여 상하간의 조화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상이 어우러진 하회마을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민간인들이 하회탈별신굿탈놀이 복원
이렇게 상민들이 스토리와 마을의 역사가 녹아있는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즐겨왔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탄압을 받다 결국 1928년 마지막으로 탈돌이 후 중단, 마을에서는 더 이상 탈놀이를 구경할 수 없었다. 당연히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점차 잊혀져갔다. 다행히 마지막 각시 역을 했던 이창희(95년 작고) 생존시 탈놀이를 전수해야한다는 의무감을 가진 지역 주민들 1973년 가면극연구회를 창립, 탈놀이 보존에 나섰다. 자료를 찾고 마지막 시연자 이창희 선생을 통한 고증을 통해 탈놀이는 원형그대로 복원됐다. 그러나 당시 만해도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이 낮아서 탈춤을 추는 것을 무당 집들에서 하는 것으로 여겨 손가락질을 당했다. 그러나 가면극연극회원들은 전통민속놀이를 전승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탈놀이를 복원했다. 그리고 가면극연구회는 이후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회장 김춘택)로 발전됐고, 1980년에는 국가 무형문화재 제 69호로 지정되는 성과를 얻었다.
하회가면극연구회의 창립 회원들은 탈놀이 복원을 위해 생업마저 포기한 채 자기희생을 무릅쓰면서 노력해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존재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현재 보존회원 31명중 3명이 인간문화재이고, 4명은 전수교육 조교, 20명은 이수자, 나머지 4명은 전수생으로 구성돼 있다. 회원 중 최고령자는 73세이다. 30세 이하가 없다. 36세가 막내다.
이들이 펼치는 별신굿이란 별난 신을 모시는 굿, 특별대제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마을공동체의 안녕과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대동굿이다.
하회별신굿은 강신(降神)으로 시작해 무동, 주지, 백정, 할미, 파계승, 양반, 선비, 당제, 혼례, 신방마당으로 이어진다. 이 전 과정은 별신굿의 연행단락인 강신(降神), 오신(娛神), 송신(送神)의 구조로 짜여 있다.
탈은 부네탈, 각시탈, 주지탈, 백정탈, 할미탈, 중탈, 양반탈, 선비탈, 이매탈, 초랭이탈을 쓴다.
1997년~2000년까지는 연간 65회, 2000년~2017년까지 연 214회 공연하고 있다. 공연은 매주개최하고 있고 상설공연,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전통문화교류전, 국가적인 문화축제 행사나 대전엑스포, 광주 비엔날레 등과 자치단체 초청공연 등을 갖고 있다.
특히 해외공연은 미국, 일본, 대만, 영국 프랑스 등에서 공연하며 우수문화의 우수성을 자랑하고 있다. 이밖에 2006년에는 안동국제탈춤축제의 세계화를 위해 한일 워킹 투어에 참가하는 등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대외에 널리고 있다.
인간문화재 전수교육 조교인 권순찬(64, 안동) 사무국장은 "탈놀이가면극회에 가입해 77년부터 시작했는데 직장을 다니다 아예 명퇴하고 탈놀이보존회원으로 본격 나섰다"며 "돈벌이를 생각하면 탈놀이 보존회 활동을 당장이라도 그만둬야 하지만 회원모두 자부심, 자긍심을 갖고 있고 탈놀이를 마약같이 중단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안동중학교와 안동 중앙고등학교 탈춤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와 인연을 맺었다는 이수자 남우열(36)씨는 "결혼하면서 탈놀이를 그만두고 돈을 벌기 위해 구미로 나가 피자가게를 운영한 적이 있다. 그러나 탈춤공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3년만에 피자가게를 접고 다시 안동으로 돌아와 탈을 썼다. 피자가게를 하면 돈은 더 많이 벌지만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적게 벌더라도 탈을 쓰는 것이 더 보람이 크기 때문에 춤을 추고 있다"며 만족한다고 말했다. 슬하에 9살, 6살 아들을 두고 있는데 내가 탈춤을 추는 것을 부모님이 반대하지 않은 것처럼 나도 아이들이 한다면 당연히 인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원들은 후진 양성을 위해 학생들에게 전수교육을 다하고 있다. 대학생, 청소년들에게 자율학습이나 동아리 모임을 통해 풍물과 탈춤을 전수한다. 초등학생들은 전통문화를 가까이 접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보전회는 앞으로 하회탈 상설공연과 국제탈춤 페스티벌의 세계화에 초점을 맞춰 보여주는 공연에서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좀더 친숙한 놀이로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보은군도 속리산 법주사의 송이놀이를 이같이 상설화 한다면 안동하회탈놀이 못지 않게 관광객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공연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속리산을 찾은 많은 관광객들에게 상설 볼거리를 제공하면 테마관광이 되어 스쳐지나가는 관광지에서 조상의 슬기와 재치를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산교육장이 될 수도 있다. 문화관광상품으로 발전하고 무형문화재로 승격, 외국인에게 한국문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는 상품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
하회탈놀이가 지역을 활성화시키고 있는 예만 보더라도 우리의 소중한 자산인 속리산 송이놀이를 더 이상 사장시키지 말고 상설화해야할 이유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