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유네스코 무형유산인 강릉단오제
④유네스코 무형유산인 강릉단오제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7.09.27 21:50
  • 호수 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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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단오제는 무형문화재, 유네스코 세계문화기록유산이다

 충북을 대표하는 관광지 속리산은 9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었다.

대형버스 터미널에서 하차한 후 법주사나 문장대를 등반하기 위한 관광객들의 행렬이 넓은 도로를 가득 메워 산을 보는 것인지 사람을 보는 것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였다.

하지만 잊혀버린 관광지가 된 속리산의 위상도 급격히 추락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지정 순위를 보면 1호 지리산(1967년), 2호 경주(1968년), 3호 계룡산(1968년), 4호 한려해상(1968년)이고 6호인 속리산은 5호인 설악산과 같은 해인 1970년 3월 24일 지정됐다. 현재 22곳의 국립공원 중 속리산의 역사성이 무색하리만치 쇠퇴해 버렸다. 급기야 올해는 문화관광부가 2년마다 선정하는 한국이 꼭 가봐야할 한국 관광 100선에서도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충북에서는 속리산과 단양팔경, 괴산 산막이 옛길이 선정됐었으나 올해는 대통령 별장이었던 청남대가 선정됐고, 단양팔경은 연속 3회, 괴산 산막이 옛길은 2회 연속 선정됐다.

관광트렌드 및 관광객들의 수요를 맞추지 못하고 있는 속리산의 실상으로 보면 탈락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그리고 현재 보은군의 관광정책으로 보면 속리산은 한국인이 꼭 가봐야할 관광 100선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는데도 난망(難忘)하는 분위기이다.

속리산은 보은군의 대표먹거리, 지속가능한 미래식량이다. 불과 2, 30년 전만 해도 잘나갔던 속리산의 모습과 2, 30년을 지나오는 동안 추락한 관광지로 변한 속리산, 살리지 못한 숨은 매력을 재 발굴, 관광보은의 위상을 찾을 수 있도록 선진 사례 등을 통해 해답을 찾아본다.

글싣는 순서

▷속리산의 화려했던 명성, 그땐 그랬다

▷속리산의 화려했던 명성, 그러나 지금은

지역 관광상품과 타 지역 관광상품 비교 보도

▷사라진 속리산 황톳길: 100선에 선정된 계족산 황톳길

▶형식에 그치는 속리산 산신제: 유네스코 무형유산인 강릉단오제

  없어진 속리산 법주사 탑돌이 : 무형문화재된 월정사 탑돌이

  없어진 속리산 세조 어가행렬 : 수원 정조대왕 능행차 재연

  단발성 속리산송이놀이 : 상설공연 안동 하회 별신굿

  판 못키우는 송이놀이 : 5일장 상설공연 정선 판 아리랑

▷관광선진지 단양군 탐방

▷속리산 명성 부활대책Ⅰ

▷속리산 명성 부활대책Ⅱ

40년 역사의 속리축전은 아직도 갈팡질팡, 정체성마저 모호

올해 관광100선에서 탈락한 보은군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인 속리산이 관광100선에 재입성할 수 있도록 대응전략 찾기 취재를 하고 있다. 취재 중 속리산이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는데도 그저 그런 동네 산에 불과한 계족산 황톳길에 밀린 사실은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데 앞으로 보도할 지역의 사업들을 보면 따라가기엔 너무 먼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도대체 보은군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상대적으로 크게 뒤쳐져 있음이 눈으로 확인되고 있다.

보은의 산재된 다양한 민속문화, 전통문화들을 엮으면 외부인들의 눈길을 충분히 끌 수 있는데도 보은군의 거의 모든 행사는 단발성이다. 매년 개최해 횟수는 오래됐는데도 역사만큼의 내공이 없다. 깊이가 없으니 내용도 부실하다. 이대로 횟수만 거듭한다면 예산만 낭비하는 꼴이다.

이번 호부터는 문화관광상품으로 돋보일 수 있는 전통문화를 상품으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보은의 현실을 다른 지역의 선진사례에 견줘 비교 보도할 계획이다.

첫번째로 소개할 자료는 1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무형문화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강릉단오제다.

속리산산신제로 시작하는 속리축전은 보은의 대표적인 문화축제이다. 40년을 이어오고 있지만 매년 똑같은 재미없는 레퍼토리,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왜 하는지 조차 명확하지 않다. 특히 속리축전은 정체성을 상실한 채 점차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축제는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강릉단오제가 예시가 되어 속리산산신제 및 속리축전의 방향을 새롭게 정립, 속리산의 전통문화 관광상품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방향을 잡는데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산신제, 스토리가 있다

1천년을 자랑하는 강릉단오제의 중심은 제례와 굿, 그리고 춤동작 위주의 무언 가면극인 관노가면극이라고 할 수 있다. 제례와 굿은 지역의 안녕, 관노가면극은 지역민들의 흥과 해학의 즐거운 놀이마당이다. 단오제의 중심 줄기인 제례는 행사 기간 총 9회를 지내는데 여기에는 과거 우리민족 고유의 민속 신앙이 그대로 담겨져 있고  강릉지역 고유의 이야기가 그대로 녹아있다. 크고 거대한 산줄기에 막혀있는 강릉은 동해에 외돌아져 있다. 대관령이라는 크고 높은 고개를 넘어야만 서울로 갈 수 있는 곳으로 오죽하면 큰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이라는 뜻의 큰바다 명, 고을 주자를 써서 명주(溟洲)라고 했다고 한다. 강릉하면 떠오른 것 중의 하나가 아흔아홉구비의 대관령이다. 속리산의 관문인 말티고개가 열두 구비인데 아흔아홉 구비면 어느 정도로 산이 높은 것인지 쉽게 가늠이 가지 않을 정도다. 아닌 게 아니라 대관령은 하도 높아서 주변에 구름이 내려앉아 있는 것을 보기도 한다. 강릉시민들은 이렇게 높은 대관령을 진산으로 신성시 했다. 산신신앙이 있는 강릉시민들은 이를 숭배하며 천재지변 극복, 지역수호 등을 기원하고 있다. 대관령 정상에는 대관령 산신각과 대관령 국사성황사가 함께 있다. 산신각 산신은 김유신 장군이다. 강릉 출신인 허균의 시문집인 성소부부고에 대관령 산신이 김유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강릉에서는 산신제를 정례적으로 지냈다. 바로 강릉단오제에서도 제례를 지내는데 대관령산신제로부터 시작된다. 산신제는 음력 4월 15일 대관령 산신당에서 김유신 장군을 모시는 산신제가 유교식으로 진행된다.

산신제의 축문은 강릉지역 주민들의 소망을 담고 있다. 구름을 일게 해서 비를 내리게 하고 악을 제거하고 재앙을 물리치는 것 등을 빈다.

산신 외에 제사를 받는 신이 또 있는데 국사성황 부부다. 국사성황신은 신라말 굴신사의 범일이고 국사여황신은 국사성황의 사자인 호랑이에게 업혀서 대관령으로 올라갔다는 정씨녀라고 하는데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는 국사성황신에 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강릉단오제에서 이같은 스토리를 배경으로 신들 대한 제사를 지내는데 제례는 행사를 마칠 때까지 총 9차례를 지낸다. 대관령 산신제를 시작으로 대관령국사성황신에게 제를 지내고 그 곳에서 단풍나무에 국사성황신이 강림했다고 믿고 단풍나무를 베어 산 아래로 모시고 내려와 구산서낭제와 학산서낭제를 지낸다. 이어 국사여성황당에 국사성황신을 모셔놓고 영신제를 올린다. 그리고 국사성황신목을 단오장 가설굿당으로 안치하면 단오날 전인 음력 5월 4일부터 7일까지 매일 아침 조전제를 지낸다. 그리고 단오제 마지막날엔 국사성황신 부부를 다시 대관령과 홍제동으로 보내는 송신제를 지낸다. 이렇게 9번의 제례를 지내면 마지막으로 소제의식을 갖는데 굿당을 장식했던 지화와 지등, 용선 등을 하나씩 들고 남대천 변으로 나가 불에 태우는 의식으로 소재의식을 마치면 단오제도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단오제의 3개 중심 축 중 제례는 이렇게 진행된다.

다른 축인 굿은 19개나 진행된다. 굿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굿인데 실제 무격들이 출연해 주관한다. 현재 단오제에서 펼치는 굿은 부정굿, 청좌굿(성황굿), 하회굿, 조상굿, 성주굿 등으로 굿을 통해 신에게 인간의 소원을 고하고 대답을 듣고 신과 인간이 함께 즐기고 신을 돌려보내는 다섯 부분으로 구성해 운영한다. 무격 중에는 무형문화재도 있고 3대째 이어내려오는 전통적인 무격 가문의 무속인도 출연한다. 마지막 중요무형문화재인 관노가면극은 춤동작으로 보여주는 무언의 가면극이다. 현재 전수자 및 보존회원들이 시연하고 있다.

술 담는 의식도 상품이다

단오제에서는 특히 많은 제례를 지내는데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술, 신주(神酒)이다. 단오제에서 술은 곧 신의 상징이고 신에게 바치는 가장 중요한 제물로서 강릉 시민들은 온갖 정성을 다함으로써 신에 대한 공경심을 표현하고 있다.

단오제는 신주를 빚는 것으로 시작된다. 신주는 강릉단오제가 시작되기 한 달 전인 음력 4월 5일 빚는다.

이날 한복을 입은 강릉시장은 강릉시 청사 앞에 병풍을 치고 기둥에는 양주미봉정(釀酒米奉呈)이라고 쓴 글을 붙여놓는다. 그리고 신주를 그기 위해 쌀과 누룩 그리고 솔잎을 제관, 도가에게 전달한다. 제관들은 술 빚는 재료를 받아 칠사당이라는 옛 관아로 가는데 신주를 빚기 위한 여정도 관광상품이다. 제관 일행은 강릉문화원에서 출발해 강릉시청에 들러 신주를 담글 재료를 받아서 강릉 적십자회관, 우체국을 거쳐 옛 관아인 칠사당에 이른다. 제관들은 솔가지를 얹어 끓인 물로 신줏단지를 정성스럽게 소독한다. 이때 신주빚기에 참여한 제관들은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입에 봉함지가 물려진다. 소독된 신줏단지가 대청마루로 옮겨지면 강릉단오굿 예능 보유자인 무녀들이 부정굿을 펼친다. 술은 담근 후에는 부정타지 말라고 칠사당에 금줄을 친다.

이같은 제관들이 신주를 빚는 것 외에 강릉시 대도호부관에서는 시민들이 신주빚기 체험을 한다. 올해는 60여명이 참가했는데 어린자녀를 동본한 가족들도 참여해 자녀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갖게 해주고 있다.

술 담글 신주미는 강릉시에서 쌀을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신주미 모으기에 참여하는 신주미 봉정의식을 통해 모은다. 강릉시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도 인터넷을 통해 주문하기도 하는데 올해는 5천570여 가구에서 171가마(1가마 80㎏)의 쌀을 모아 봉정했다. 봉정된 쌀은 술뿐만 아니라 수리취떡을 만든다. 술과 떡은 산신제를 비롯해 강릉단오제의 공식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전통과 현대의 절묘한 조화

여기까지도 눈길을 끄는 장면들이 줄을 짓고 있는데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단오장에서의 행사는 볼거리가 더욱 풍성하다. 옛 기록에 강릉단오제는 신목을 강릉부사에 모셔두고 팻대(호개)를 만들어 마을의 서낭당과 관청을 돌며 관노가면극과 굿을 펼치는 길놀이로 단오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성황사나 서낭당이 없어지고 전통민속문화가 쇠락하면서 이것들도 함께 사라졌다. 강릉도 단오제를 중요무형문화재로 등록할 당시는 길놀이를 할 수 있는 조건이 사라지고 영신행차도 간신히 재연, 명맥을 이었을 정도였다. 이후 2011년부터 신통대길 길놀이를 새롭게 시작했는데 길놀이 전통을 바탕으로 재창조된 콘텐츠로 전통에 역사성 그리고 재미까지 더해졌다. 신통대길 길놀이는 흔히 군민체전이나 도민체전 입장식 때 각 읍면 또는 각 시군이 퍼레이드를 펼치는 것과 흡사하다. 신목과 신위를 앞세우고 농악대, 풍물패, 관노가면극 악사들이 뒤따르며 농악과 풍물을 치고 춤을 추며 흥겹게 길놀이를 펼치고 시민들이 단오등을 들고 뒤따르며 즐기는 것이다.

강릉시의 19개 읍면동에서 단위별로 특색있게 준비해 길놀이 가장행렬에 참여한 인원만도 수천명에 달하고 길놀이도 2시간 이상 시내를 행진하게 된다.

이렇게 길놀이를 하며 한바탕 질펀하게 놀면서 행사장까지 입장하는 동안 다양한 볼거리가 제현되고 주변에 즐길거리, 먹거리가 즐비해 구경꾼들의 눈과 귀, 입이 흡족할 수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단오행사는 재미를 더한다. 담장 안에 갇혔던 여자들이 담장 밖의 세계를 구경할 수 있는 그네뛰기부터 삶의 무게에 짓눌린 사내들에게 힘자랑을 허락했던 씨름대회, 투호던지기와 같은 전통 민속놀이부터 창포물에 머리감기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것들이 펼쳐진다.

또한 축제에서 체험이 빠지면 추억만들기에도 실패. 절편 위에 무늬가 새겨진 나무틀을 놓고 누르면 꽃모양 등 예쁜 모양을 얻을 수 있는 떡살찍기 체험, 수리취를 넣어 찧은 찹쌀떡에 콩고물을 묻힌 인절미도 맛볼 수 있다. 신주빚기 체험에 동참한 시민들이 봉정한 쌀을 모아 빚은 술도 맛볼 수 있다.

또 단오장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화폐 개념으로 단오 전통체험촌 티켓을 이용해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다. 단오등 만들기와 부채만들기, 단오 캐릭터 탁본뜨기, 단오차 시음도 할 수 있다.

구미가 당기는 다양한 체험과 독특한 문화행사로 강릉단오제가 열리는 내내 남대천에 펼쳐진 단오난장은 사람들에게 밀려다닐 만큼 인파로 가득하다. 상가와 공연장 역시 빈자리를 찾지 못할 정도로 북적거린다.

사단법인 강릉단오제위원회 김동찬 상임이사는 "객지로 나갔던 출향인도 단오 때면 고향을 찾는다. 또 강릉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부모님께는 단오용돈 드리고 지갑이 홀쭉해진 직장인은 단오 가불, 인심좋은 사장님은 직원들에게 단오 보너스를 지급한다. 그리고 단오기간 중 한 번이라도 단오난장을 찾지 않으면 좀이 쑤시고 뭔가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고 말했다. 그 만큼 강릉시민들에게 단오제는 체화돼 있어서 단오행사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강릉단오제는 (사)강릉단오제위원회가 행사의 기획부터 관리 운영까지 모든 것을 총괄하고 있으며 강릉단오제보존회는 민속행사 및 무형문화재 등의 공연 등을 관장하고 있다. 단오제는 끝이 났지만 단오제 지정문화재인 제례, 굿, 관노가면극의 전승과 보존, 그리고 창작 공연 등을 계속하고 있다. 또 대관령 눈꽃축제, 정선 아리랑제, 제주 탐라문화제, 전주 세계소리축제 등 자매도시 및 자매단체와의 공연교류도 하고 있다, 이런 계속되는 연습과 공연이 내공으로 쌓여 단오제의 수준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것이다.

40년 속리축전, 넌 정체성이 뭐니?

강릉단오제는 1967년 중요무형문화제 제13호로 지정되고 2005년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인류 무형 문화유산 대표 목록으로까지 등재됐다. 단오행사는 어느 지역에나 다 있었다.  도교, 토속신앙적인 굿도 어느 지역에나 다 있었다. 산신제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마을이 많다. 하지만 보은군은 주민 화합을 도모하는 축제로 승화하지 못하고 강릉은 이를 대규모 축제로 발전시켰다. 누구의 의식이 앞서있고 누가 더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있는지에 대한 차이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벌어져 있다.

우리는 우습게 알고 미신으로만 여기던 굿을 전통문화로 발전 지역축제로 연결해 많은 외지인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강릉 단오제를 보면서 속리산산신제로 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속리축전이야말로 지역의 전통문화공연을 펼치는 한마당으로 풀어낸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올해로 40년 역사를 맞는 속리축전의 현재는 당초의 취지는 사라졌고 정체성마저 모호해졌으며 단순히 돈을 쓰기 위한 행사로 전락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는 민선군수 시대가 자행한 단적인 폐해다. 따라서 속리산에서 개최하되 당초대로 개최일을 5월 초파일로 변경하고 현재와 같이 하루 온종일 풍물만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전통민속놀이를 공연하고 줄타기 등과 같이 외부의 중요한 전통문화공연을 유치하고 여러 체험프로그램이 어우러진 문화 축제로 성격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 산신제는 현재와 같은 형태가 아니라 역사적 자료를 찾아 스토리텔링 작업을 통해 보완하고 중단된 속리산 탑돌이, 흰돌물다리기, 속리산 송이놀이 등 지역별로 특색있고 또 민속경연대회에서 출품됐고 수상했던 작품, 이외에 지역별로 있는 전통놀이를 발굴해 읍면별로 다양한 놀이를 공연하는 잔치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이를 지속적으로 공연하고 발전시켜 향후 개별적으로 무형문화재에 도전하는 등 중장기적인 비전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전국 2시간대에 닿을 수 있는 접근성에다가 인근에 120만 대전시, 80만 청주시, 30만 세종시를 위성도시로 두고 있는 보은군이다.

이들을 타깃으로 한 문화상품 개발이 필요하다. 40년 역사의 속리축전을 더 이상 정체성이 모호한 퇴락한 행사가 아니라 정통성을 되찾아 전통문화축제로 승화시킬 첫 번째 도전상품이길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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